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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소소한기록)

독산성(세마대)에서 가을을 음미하다.

바쁜 일상에 깊어 가는 가을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지나는 것이 아쉬워 가까운 독산성의 산책로를 올라 보았다.
독산성은 오산시 북서쪽의 작은 산자락을 감고 있는 산성이다.










성벽을 따라 약 3km 정도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산 정상에는 세마대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정자와 보적사란 조그만 사찰이 있을 뿐 그리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화려한 가을 단풍이 없더라도 나름대로의 가을을 음미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고 그 마음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가을이 마음속에 스며드는 듯하다.






역사적인 의미의 독산성과 세마대
독산성은 사적 제 1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성의 총연장은1,100m이며,내성은 350m이 달하는 아담한 산성이다.
독산성의 처음 축조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독산성의 위치적 특성이 용인,양지간에 있는 고성과 남한산성이 기각지세를 이루어 왕도의 문호를 굳게 한다는 전략상의 이점이 있는것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은 고성이었고 신라통일기나 고려시대에서도 군사상 요지로 돼 왔다.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왔고 조선시대에는 독산성이라 불려왔으나,임진왜란때 권율장군이 폈던 진묘(眞妙)한 병법 전략에 연유해 지금은『세마산』또는『세마대』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다.

독산성은 군사기지로서의 주요 위치에 놓여있긴 하지만 샘물의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1593년(선조26) 명나라 원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남하함에 전라도순변사이던 권율장군이 명군과 호응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자 2만 명의 군사로 이곳에 진을 치고 대군과 대치한 독산성 전투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은 이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탐정군사에게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군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백마를 산위에 끌어올려 흰쌀을 말에 끼얹어 말을 씻는 시늉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본 왜군은 성내에 물이 많은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샘물의 부족 한 단점을 권율장군이 슬기롭게 극복한 세마대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1957년에 복원되었다.